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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 교수가 답하다 - 교회와 예배

최종 수정일: 2021년 2월 12일

- 2021년 겨울연합수련회 질의응답 -

"열심히 말씀 들으시고 같이 반응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질문들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진설명] 주강사 이승구 교수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2021년 겨울연합수련회 집회 시간에 설교를 들으며 질문한 내용들을 주강사 이승구 교수님께 전달하였습니다. 다음은 교수님께서 답변하신 내용들입니다.


박인엽(서신2학년) = 오늘날의 교인들은 간섭받기 싫어하면서도 소속감은 갖고 싶어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교인들을 대할 때 간섭받는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교회에 잘 소속되도록 하는 구체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목사님의 지혜로운 방법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이승구 교수 = 이것은 누구에게나 아주 어려운 문제이지요. 그러나 이 귀한 질문 안에 이미 답이 들어 있습니다. 간섭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나 교회 공동체에 잘 속하게 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일단 대개는 누군가가 인도하여 오신 것이니 그분들 안의 유대가 더 강화되도록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주일에 모임만이 아니고 인도해 오신 분들과 좀 더 친해 질 수 있도록 하고, 그 분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이 좋습니다. 끼어서 접촉하되 적당한 때에 교역자나 장로님들이 그렇게 두 분과 같이 만나서 더 친해지도록 해야 하지요. 신천지 사람들은 잘하는데 우리는 못 하는 이 일에 좀 더 신경을 쓰면서 개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항상 기도하면서 늘 지혜롭게 그리해야지요. (신통한 대답이 못되어 죄송합니다)

▲박인후(서신3학년) = 이신칭의와 관련해서 질문합니다. 웨슬리는 처음칭의와 최종칭의가 다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극히 드물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다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이신칭의를 부정하는 말이 아닐텐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승구 교수 = 대개 이신칭의에 관한 한 웨슬리와 개혁파의 입장을 같다고 이해됩니다. 혹시 때로 이런 표현을 웨슬리가 했을 때 그 의도는 항상 웨슬리가 그리하였듯이 성도들을 격려해서 열심을 내도록 하려는 의도를 그리하였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일단 처음 칭의와 최종 칭의가 혹시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하는 분들은 바울의 새관점을 표현하는 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분들의 의도도 열심히 살도록 하려는 것인데 문제는 이것이 성경의 전체적 가르침에 비추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바울에 대한 새 관점적 접근을 하시는 분들에게 그들이 일종의 반(半)-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웨슬리가 그런 시사를 했다면 우리는 웨슬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여기면서 존중하고 존경하면서도 그런 주장에 대해서는 틀린 주장을 하였다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도 잘못 생각하는 일이 있을 수 있고, 우리의 판단 기준은 성경이니 그것에 비추어 서로를 교정해 가는 것이지요.

처음 칭의와 최종 칭의가 다르다면 구원이 확신이 없어지고, 결국 칭의라는 말이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구별은 칭의함을 받았다고 하는 분들이 하도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므로 나타나는 것인데 우리는 다음 같은 두 가지 잘못을 행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 칭의를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헌신하고 성화에로 나아가는데, 전혀 그렇게 나아가지 않는 것 (2) 그런 현실들 때문에 한번 칭의 받은 것이 취소될 수 있다고 비성경적인 주장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장주영(총신5학년) = 정통 장로교는 예배당 안에 십자가를 두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건물 밖에 세우는 십자가 첨탑은 상관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승구 교수 = 예배당 외부에 십자가를 설치해서 여기 예배당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을 문제시한 적은 없습니다. 예배당 안에서는 이것이 우상화되거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는 것을 오도할 것들은 다들 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에 너무 크지 않게 예배당임을 알리는 장치를 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너무 커서 위압감을 주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여겨집니다.

한성훈(총신11학년) =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을 보면 예배의 마지막 순서인 ‘축도’를 ‘강복선언’이라고도 말하는데요. 이걸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형식이 달라지는데, 축도라고 하면 기도의 형식이 되어지고, 강복선언이라고 하면 말씀선포의 형식이 되어지는데, 목사님은 ‘기도’의 형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강복선언’의 의미는 어떻게 봐야하는지요?

▲이승구 교수 = 강복 선언도 기도이지요.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복을 내려 주시는 것을 믿으면서 선언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장에서는 늘 기도로 생각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수종 들어야 합니다.

▲목회자GBS11조 = 이승구 교수님의 말씀이 너무 좋았습니다. 예배에 대해 공부할 수 있도록 관련된 책 2-3권을 추천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승구 교수 = 기본적으로 <<한국 교회가 나아 갈 길>>의 공예배에 대한 장에 인용된 여러 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그 중 3권만 따로 언급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D. A. Carson, ed., Worship: Adoration and Action (Carlislie: The Paternoster & Grand Rapids: Baker, 1993).

2. 김홍전, 『예배란 무엇인가』 (서울: 성약, 1987).

3. Philip Graham Tyken, Derek W. H. Thomas, and J. Ligon Duncan, III, eds., Give Praise to God: A Vision for Reforming Worship, Celebrating the Legacy of James Montgomery Boice (Phillipsburgh, NJ: P&R,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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